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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균 속도

 

 

쉘터인 플레이스 오더가 내리기 전에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회사가 끝나고 발레를 가고싶거나 백화점을 가고싶거나 목요일 7시에 미술관을 가고싶다면 우버를 불렀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디가 가고싶고 무엇이 하고싶으면 주저없이 우버를 불렀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우버를 타는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게 되었다. 내 발은 꽁꽁 묶였다. 한순간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30분 이내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면 먼 곳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두부가 떨어져서 장을 보러가고 싶어도 남자친구에게 운전을 부탁해서야만 갈 수 있었다. 아니면 재택근무가 끝난 여섯시 일곱시에 (집에서 일했으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왕복 한시간을 걸어서 다녀와야 다음날 점심에 좋아하는 두부를 먹을 수 있었다.

 

우버를 타고 슥슥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치던 세상은 이제 내 걸음 속도 아니면 달리는 속도로만 느리게 지나갈 수 있었다. 

 

 

 

 

 

 

 

 

 

한달 전의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10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앞에 내가 탄 차보다 큰 버스가 몸을 돌릴 때가 너무 무서워 면허시험 이후에 단 한번도 차를 몰아 본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뛰거나 걷지 않고,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자전거 밖에 없어 보였다. 마침 같은 건물 위아래 층에 살던 남자친구가 걸어서 삼사십분 거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너를 보러 더 편하게 가고 나 스스로 가고싶은 데를 더 쉽게 가보겠다며 큰 소리치고 탈 줄 모르는 자전거를 선물받았다. 

 

 

 

열심히 고른 까맣고 하얀 자전거를 남자친구가 열심히 조립하는 동안에 나는 유튜브에 성인 자전거 배우기를 검색했다. 그 중에 50년간 못타던 자전거 2시간 만에 배우기 동영상 속 아주머니 학생의 운동신경에 이입하며 배우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했다. 학습순서는 이렇다. 탁탁 슝 페달 없이 달려보고 페달을 하나씩 추가해서 달려보다가 마지막 단계는 한발로 굴린 페달 옆 페달에 발을 올리며 탄다. (동영상 링크는 아래에) 

 

신기하게 넘어질 것 같으면 발을 땅에 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히고 나니 자전거를 배우기가 훨씬 쉬워졌다. 저 얇은 두 바퀴가 내 몸을 지탱하고 나는 발을 힘차게 굴려 앞으로 나간다. 넘어질 것 같으면 브레이크를 걸고 내 발로 땅을 디디면 대부분 넘어지지 않고 멈춰설 수 있다. 사람들이 인생을 자전거에 비유할 때 그런가보다,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꾹꾹 두발로 걸어가던 코너를 동그라미를 그리며 부드럽게 도는 기분이 좋다. 멀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커피가게가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더운 날 나가서 운동을 하고 싶을 때 달리기 대신 두 다리를 움직이며 자전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 때 좋다. 아직 내가 앞에 달리고 네가 뒤에 있어야 안심하고 달리지만 너와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의 폭이 넓어져서 좋다. 지나가는 풍경의 속도의 폭이 서고, 걷고, 뛰고 자전거의속도로 넓어져서 좋다. 

 

새롭게 배우게 된 한가지는 소소하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가장 큰 즐거움은 꽁꽁 묶였던 기분이 조금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것.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CiZA6w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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